레이디타임즈
> 뉴스
은행나무를 겁주는 사람유혜련의 <감성나들이>
유혜련 기자  |  yoo2586@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11.09  11:42:5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오래전 환경청이 주관하는 팸투어에 동행 취재를 한 적이 있다. 취재도 취재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부여의 백마강에서 황포돗배를 타고 고란사로 가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어 부푼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나를 선두로 45인승 버스에는 하나 둘씩 동행할 사람들이 올라탔다. 모두가 낯선 얼굴들이어서 아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신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펄쩍 뛰어 오를 만큼 반가운 얼굴이 버스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었다. 바로 신혼시절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었다. 

 의외의 장소에서 우연처럼 이루어지는 만남은 영화 속에서나 펼쳐지는 광경이 아니었다. 지금도 가끔은 그리워지는 얼굴 중엔 목사님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어찌나 반갑던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내게는 친정아버지처럼 자상한 모습으로 막내딸 고자질하듯 고하는 얘기들을 귀담아 들어 주시고 기도로 다독여 주시던 분이 바로 목사님이셨다.  

목사님과의 만남으로 인해 그날 팸투어는 더욱 즐거운 여정이 되었다. 팸투어의 마지막 일정인 고대하던 황포돗배를 타고 백마강을 거슬러 고란사로 향하면서 배안에서 목사님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안부도 기억나는 대로 여쭤도 보고 교회 앞마당에 심겨진 은행이 두가마니도 넘게 달리던 은행나무의 안부까지 물었다. 목사님은 연신 물어대는 나의 질문에 귀찮은 기색은커녕 신바람이 나셨다. 그리고는 내가 이사 간 후에 벌어졌던 일들과 그곳 사람들의 소식을 재미있게 전해 주셨다. 그리고 은행나무는 아직도 교회 앞마당에 늠름하게 잘 있다고 안부를 전하시면서 은행나무와 관련되어 벌어진 재미있는 일도 들려주셨다.  

“그렇게 잘 달리던 은행나무가 몇해째 열매가 열리지 않아서 베어 버리려고 했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톱을 들고 베어버리는 척을 하면서 겁을 주면 다시 은행이 열리는 수가 있다고 해서 호통에 호통을 쳤는데 내년엔 열매가 많이 달리려나 내심 기대하고 있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어.” 

 황포돗배를 타고 고란사와 낙화암까지를 끝으로 팸투어는 끝이 났다. 목사님과 헤어져 집으로도 돌아와서도 목사님께 전해 들었던 은행나무 이야기는 머릿속을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겁을 주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많은 생각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때론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지치고 피곤할 때, 감당할 짐들을 십리만리 내던지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있다. 이런 순간, 열매 없는 은행나무를 향해 ‘베어버리겠다’고 엄포를 주듯 ‘정신 차리고 일어나라’고 천둥 같은 호통을 치며 겁을 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벼락같은 호통에 오줌지리도록 겁이 나 다시금 마음을 정립하고 가던 길을 달려가다 보면 먼 훗날, 실한 열매 한 두 개쯤 매달고 있을 테니까. 

 내년 가을엔 목사님의 호령으로 잔뜩 겁이 난 은행나무가 주렁주렁 많은 열매를 매달고 가을바람에 노란 은행잎을 승리에 깃발처럼 나플거리면 좋겠다. 가만히 잠자리에 누워 은행나무를 향해 겁을 주는 목사님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웃음보가 터졌는지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유혜련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가장 많이 본 기사
1
고향가기 좋은 시간
2
새해야 이리 오너라
3
가면 놀이
4
WISET 글로벌 멘토링
5
소비자에게 의미가 있는 브랜드를 만든다
6
100%우리밀제과제빵, 식문화 트렌드 선도하다.
7
기다림이여 영원하라
8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 제안하는 10대 성교육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대전광역시 동구 태전로 27 4층(중동 9-3)  |  대표전화 : 042-488-5050(010-4413-2589)  |  팩스 (042)488-5050
등록번호 : 대전 아 00149  |  등록연월일 : 2013년 4월23일  |  사업자번호 : 305-92-36844  |  발행인·편집인 : 유영숙
Copyright © 2013 레이디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lady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