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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박경은의<혼자 견디는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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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8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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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려는 마음이 힘겨울 때는 때로는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선생님,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라고 물으면 “그 사람의 마음이고 생각인데, 어찌 우리가 알 수 있을까요?”라고 다시 되묻는다. 그러면 “아. 그렇죠.”그렇게 대답하다가 이야기 도중에 또 묻는다. “그래도 그렇지, 자기 입장만 있나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서 미칠 지경이예요.”라고 말을 한다. “글쎄요. 이렇게 억울하고 화가 난 이유가 뭘까요?” 라고 다시 되묻는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이런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지 않아도 될 많은 일들을 이해하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지 자신도 모른 채 방대한 양의 에너지를 쏟아낸다. 거기에 쏟는 감정은 사실상 좋은 감정보다 불쾌한 감정이 대다수다.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뭘까?’ 되묻고 싶어진다. 필자 또한 그런 곤경 속에 빠져 본 경험이 많았다. 그래서 자신에게 물었다. ‘그 이유가 뭘까?’ 자신도 모르는 것을 타인을 통해 묻게 된다. 때론 자신과 관련 없는 질문을 받을 때는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인지 머뭇거리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다 이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단지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조심성을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하는 부분이 많을 뿐이다.

 

우리가 초·중·고등 교육을 받을 때, 선생님의 말씀이 뭔지 이해하고 공부를 하고 교육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입식으로 외워야 하는 부분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부모의 가정교육, 잔소리, 밥상머리 교육 등 자녀의 입장에서 얼마나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자. 그냥 주입이 되었고, 주입된 반복된 교육이 세뇌되었으며 내 속으로 함입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는 다시 자녀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또는 전혀 반대의 방식으로 하고 있지는 않는가. 결론적으로 우리는 살면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부분들을 그냥 넘기거나 때로는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뿐이지, 이해하려고 하면할수록 자신이 힘들다는 것을 거듭 경험했을 것이다.

 

나이가 한 해 두해 먹어가면서, 세월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이해되어지는 것과 이해하는 것들로 가득해짐을 알게 된다. 그 시절에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시간이 흐르니 이해되어지는 것과 이유를 묻지 않아도 이해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경험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구지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계절이 바뀌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옷차림이 바뀌고, 이불의 두께도 바뀐다. 냉방기에서 온풍기로 바뀌고, 언어의 패턴도 바뀌게 된다. “오늘 많이 더우시죠?”에서 “오늘 많이 춥지 않으세요?”처럼 말이다. 그것이 인간뿐이겠는가. 사계절을 지닌 우리나라에서는 계절마다 피는 꽃들의 종류도 다르다. 그들은 제 때를 알기에 스스로 피어나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이 자연스러움이다. 굳이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과 이유가 필요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유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사적인 관계, 공적인 관계 속에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적인 관계에서의 갈등은 ‘그 사람은 어떤 이유로 거짓말을 했을까?’, ‘어떤 생각으로 이렇게 결정했지?’ 등 각자의 생각의 틀로 타인을 분석하거나 평가를 하게 된다. 이런 경우 어떠한 의문이나 이유에 궁금증을 갖는 것은 감정소모와 에너지 낭비이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도 없지만, 그 사람이 해명을 한다고 한들 다 이해가 될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는 이유가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삶을 살다보면 계획하지 않는 길을 가야할 때가 있다. 때로는 좌회전도 해야 하고, 우회전도 하면서 잘못 왔다고 생각이 들면 유턴하거나 후진하기도 한다. 급할 때는 중앙선을 넘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여러 가지 상황을 구태여 알려고도 이해하려고 또는 이해받으려고 하지 말자. 그것은 자신을 힘들게 하면서도 상대방을 힘겹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있을 때 스스로 이해되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고 신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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