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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에스 토마스의 <왕국>장인수의 <신앙시 산책>
장인수  |  영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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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22  11: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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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에스 토마스-왕국

 

그것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안에선

전혀 다른 일이 진행되고 있다.

가난뱅이가 왕이 되고

결핵환자가 치료되는

잔치가 열린다. 거기선 소경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울과, 슬그머니 돌보는 사랑이 있다.

그리고 산업은 굽어진 뼈와 삶에 의해

망가진 마음들을 고치기 위해

존재한다. 만일 네가 욕망을 버리고

너의 궁핍만을 자신에게 제공하고,

잎사귀처럼 푸른 네 신앙을 단순하게

바치기만 하면. 그것이 멀리 있다 하지만

가는 데는 긴 시간 걸리지 않고,

입장료도 필요 없다.

 

  R. S. Thomas-Kingdom

 

It’s a long way off but inside it

There are quite different things going on:

Festivals at which the poor man

Is king and the consumptive is

Healed; mirrors in which the blind look

At themselves and love looks at them

Back; and industry is for mending

The bent bones and the minds fractured

By life. It’s a long way off, but to get

There takes no time and admission

Is free, if you will purge yourself

Of desire, and present yourself with

Your need only and the simple offering

Of your faith, green as a leaf.

 

이번 신앙시 편에서는 웨일즈의 신앙시인 알 에스 토마스(Ronald Stuart Thomas)의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웨일즈 출신으로 영국 국교회 사제였던 그는 형이상 종교시인과 함께, 같은 웨일즈 출신의 19세기 시인인 홉킨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어지며, 신앙시의 깊이가 현대 시인으로서는 가장 수려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토마스의 시는 참으로 명쾌하고 명료하다. 많은 시어를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복잡한 상징적 언어구성도 요구하지 않은 채 자신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더욱이 복잡성을 띄지 않으면서도 시적 기교를 마음껏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남다른 창작 능력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이 망가진 마음을 고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범죄가 있어야 구원의 필요성이 대두된다는 역설과 비슷한 논지라 볼 수 있다. 물질문명이 삶을 지배해야만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욕망을 버리고 남을 위하는 삶을 살아가려는 지상적 삶의 순화를 통한다면 비록 천국이 멀리 있다 할지라도 누구나 손쉽게 그곳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천국의 삶과 지상의 삶은 전혀 반대 적인 삶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해석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왕국 시민의 자격이 가난함에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성서 마태복음의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이 저희 것이 된다는 산상수훈을 연상케 해준다. 인간 세상의 왕국이라면 당연히 부와 명예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을 것이나, 천국은 오히려 그와 정반대의 가난한 이의 것이라는 역설적 의미가 담겨 있다.

 

신이 없을 것 같은 세상 속에서도 왕국은 건설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신이 부재한 상태에서야 말로 진정한 신의 임재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진정한 신의 존재를 알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토마스가 “왕국이 멀리 있다.” 라고 두 번씩이나 강조한 것은 우리가 바라는 신의 임재는 그리 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라 생각되어진다. 신의 임재는 신의 부재를 깨닫고 그리고 그것을 부단히 간구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여기서는 천국의 역설적인 모형이 그려진다. 여기에는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천국의 실제가 과연 어떠한 실체로 존재 하는가 라는 점이 부각된다. 웨일즈의 시인 중에서 헨리 본(Henry Vaughan)은 천국의 실체를 인간의 영혼이 돌아가야 할 본향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인간 영혼은 본래 천상에 거주하였는데 잠시 지상세계에 떨어져 나와 있다가 다시금 천상세계로 돌아간다는 천국회귀의 사상이 근본을 이룬다. 반면에 제라드 맨리 홉킨스(Gerald Manly Hopkins)의 경우는 천상의 실체는 신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상세계에 건설하는 신의 나라 역시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물론 이러한 사상의 근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기도문에 나오는 “나라에 임하옵시며”의 기원과 유사성이 깔려있다. 이 경우에 토마스는 홉킨스의 천국관과 조금 유사성을 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의 부재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부재의 의식이 더욱 깊어져 부재는 무관심으로 넘어가고 그리고 결국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더욱이 산업화 이전에는 생활의 불편과 어려움이 곧바로 신에게 의탁하는 삶의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었지만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물질문명이 사람들에게 풍요와 만족의 삶을 전달해 주자 사람들은 점차 신에 대한 의존도가 약화되기 시작했다. 삶의 의탁이 신에게서 과학과 산업의 발달로 인한 물질만능의 풍조로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풍조는 신의 부재를 더욱 가중시키고 급기야 교회의 몰락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신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바로 토마스의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신의 부재가 바로 신의 임재의 단초가 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신의 존재를 시적으로 표현한다는 사실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존재의 표현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토마스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추구한 것이 바로 신의 존재 표현의 방식이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그는 산업화와 더불어 과학이 발달하고 삶이 물질로 인해 경제적 풍요를 구가하면서 교회가 붕괴되어가고 인간의 정신이 신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시대 속에 살아가면서 그러한 신의 임재에 대해 사람들에게 강하게 언급해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특히 자신이 목회자라고 하는 것과 맞물려 설교와 시 창작의 기본 흐름이 신의 부재를 역설적으로 넘어서면서 신의 임재의 상황을 묘사하려는 강한 열정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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