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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허버트-성묘장인수의 <신앙시 산책>
장인수  |  영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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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5  13: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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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시 산책 22

 

조지 허버트-성묘

 

오 축복받은 육신이여! 당신은 어디에 던져졌나요?

당신을 위한 거처가 아니라 차갑고 단단한 돌인가요?

그렇게 많은 심장들이 땅이 있었지만 그런데 당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요?

 

확실히 우리들의 심장 안에 훌륭하게 저장할 여지는 남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심장들은 많은 죄를 기거시킬 수 있기에.

수천의 사소한 것들이 거기에 기거하는데, 이제 문 밖에서 그들은

당신을 남겨둡니다.

 

그들을 크게 보여주는 것, 잘 맞지 않게 보여 주는 것.

어떤 죄가 순수한 바위를 범하는가. 어떤 것이 지금

당신을 잡고 있는가? 누가 살인자에 대해 그것을

기소합니까?

 

우리의 단단한 심장을 가진 곳에서 당신을 칠, 돌을 들었고,

그리고 그것을 놓치고 가장 거짓되게 당신을 심문했고,

단지 이러한 돌들만이 조용히 당신과 질서를

향유합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하늘의 기교로 율법이 돌에

쓰여 졌으니, 그래서 또한 그 말의 문자이신

당신은, 당신을 지킬 적합한 마음을 찾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가 시작했던 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완강하고

그처럼 멸망해야 합니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차갑고

단단하고 더럽지만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Sepulchre

 

George Herbert

 

O blessed body! Whither art thou thrown?

No lodging for thee, but a cold hard stone?

So many hearts on earth, and yet not one

Receive thee?

 

Sure there is room within our hearts good store;

For they can lodge transgressions by the score:

Thousands of toys dwell there, yet out of door

They leave thee.

 

But that which shows them large, shows them unfit.

What ever sin did this pure rock commit,

Which holds thee now? Who hath indicted it

Of murder?

 

Where our hard hearts have took up stones to brain thee,

And missing this, most falsely did arraign thee,

Only these stones in quiet entertain thee,

And order.

 

And as of old, the Law by heav'nly art

Was writ in stone; so thou, which also art

The letter of the word, find'st no fit heart

To hold thee.

 

Yet do we still persist as we began,

And so should perish, but that nothing can,

Though it be cold, hard, foul, from loving man

Withhold thee.

 

 

 

이 시의 제목인 성묘(Sepulchre)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 주검을 안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사실 그리스도는 십자가상에서 죽은 후에 장사지냈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였기 때문에 무덤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 시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은 후에 사흘간의 무덤 속의 과정을 그려주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인은 그러한 주검이 어떻게 인간들에 의해 배척받았는가를 그려주면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부활의 역사를 염두에 둔 채 믿음이 부족한 인간들의 신앙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어려움과 곤경의 삶으로 시작하였고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삶의 여정이 지속됨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머리 둘 곳이 없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과 함께 목수의 아들로서 풍부하지 못한 생활을 지속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며, 세상 죄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과 죽임을 당하신 사건은 가히 평범한 삶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죽음 이후에도 시신을 보관 할 곳조차 없어 타인의 무덤을 빌려 장사지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을 볼 때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가 곤경과 고난의 집합체임을 실감케 해 주는 것이다. 이 시에서 그려지는 상황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지막 고난의 삶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후에 무덤도 없이 시신조차도 방황하는 모습과 인간들에 의해 멸시당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사실 예수의 탄생조차도 갈 곳이 없어 방황하다가 말구유에서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죽음에 이르러서까지 갈 곳을 마련하지 못해 헤매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실상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시의 전개는 먼저 죽음 이후에 몸 둘 곳을 마련하지 못한 예수 시신의 방황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것이 탄생의 상황과 병치되면서 신앙인의 마음을 두드리게 해 준다. 그리고는 그러한 시신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시의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그러한 당시의 사람들과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이 동일함을 느끼게 해 주는 극적인 자극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여전히 죄로 물들어 있는 세상을 그려준다. 이것 역시 지금의 우리 현실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예수 당시에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나 아무런 변화도 없이, 똑 같이 죄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를 향한 우리 인간들의 행동은 돌로 치고 심문하고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까지 하였고, 결국 예수를 위해 도움을 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음을 화자는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예수의 구원 사역을 그만두게 할 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시의 시작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현실과 그 주검조차도 가야 할 곳을 정하지 못한 채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주검이 있을 곳이 슬픔과 함께 따스한 보냄의 현장이 아니라 그 수많은 추종자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이 그려지고 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주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물들어 있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음도 그려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집어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죄가 아닌 우리들의 죄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돌을 들어 그리스도를 배척하였음을 그려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은 예언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율법이 돌에 쓰여 졌다는 것은 모세의 십계명을 상징하고 있으나, 여기서의 돌과 우리 마음의 돌이 하나의 병치를 이루어, 율법의 견고함과 인간 마음의 단단해짐을 동시에 그려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시인은 그러한 마음을 가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는 것을 그려주고 있다.

 

이 시에서도 허버트의 신앙적인 특징을 살려놓은 시어들은 살펴 볼 수 있다. 여기서의 심장이란 그의 어느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의미하고 있다. 그 심장은 지상에서의 삶으로 인하여 죄로 물들어 있고 단단해진 돌과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그려주고 있다. 문 밖에 남겨 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추종하던 사람들이 죽음 이후에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을 연상케 하는 부분인 것이다.

 

돌의 상징성은 인간 마음이 굳어져 버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돌이 바로 그리스도의 주검이 안치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차가운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주검이 들어가려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묘의 의미를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부활의 의미로 승화될 수 있음을 망각하는 인간의 상황이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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