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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허버트 <사랑>장인수의 <신앙시 산책>
장인수  |  영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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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8  09: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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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시 산책 17

 

조지 허버트 -사랑(III)

사랑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나 내 영혼은 물러섰다.

먼지와 죄와 허물 때문에.

그러나 눈치 빠른 사랑은 내가 처음 들어설 때부터 기운 없어하는

모습을 보고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와서는 상냥하게 물었다. 혹시 나에게 무슨

부족한 것이 있느냐고.

 

“이곳에 손님으로 들어 올 자격이 없습니다.” 라고 나는 대답했다.

“당신은 그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라고 사랑은 말했다.

”불친절하고 배은망덕한 제가요“ 아, 귀하신 분이여, 저는 당신을

쳐다 볼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내 손을 잡고 미소 지으며 대답하였다. ”당신의 눈을 만든 사람은

내가 아니고 누구인가?“

 

“옳습니다. 주여, 하지만 저는 눈을 더럽혔으니 저의 수치가

응분의 벌을 받게 하소서.”

“그 책임을 질 사람이 누군가를 너는 모르는가?” 라고 사랑은 말한다.

“그렇다면 저는 섬기겠습니다.”

그러자 사랑은 “당신은 앉아서 나의 살을 먹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앉아서 먹었다.

 

끝맺음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

그리고 땅위에는 평화

선하신 의는 인간을 향하여

 

George Herbert-Love (III)

 

Love bade me welcome. Yet my soul drew back

Guilty of dust and sin.

But quick-eyed Love, observing me grow slack

From my first entrance in,

Drew nearer to me, sweetly questioning,

If I lacked any thing.

 

A guest, I answered, worthy to be here:

Love said, You shall be he.

I the unkind, ungrateful? Ah my dear,

I cannot look on thee.

Love took my hand, and smiling did reply,

Who made the eyes but I?

 

Truth Lord, but I have marred them: let my shame

Go where it doth deserve.

And know you not, says Love, who bore the blame?

My dear, then I will serve.

You must sit down, says Love, and taste my meat:

So I did sit and eat.

 

Finis

Glory be to God on high

And on earth peace

Good will towards men.

 

사랑이라는 주제는 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주제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시를 대하는 독자들이 시 속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시어가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이다. 흔히들 사랑에는 세 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그 세 가지 종류 중에서 시에서 가장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사랑은 에로스의 사랑일 것이다. 즉, 남녀 간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부모나 형제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필리아의 사랑이 그것인데 이러한 사랑의 주제는 시 속에서는 그리 쉽게 만날 수 없는 주제라 생각된다. 마지막 하나의 사랑은 바로 아가페의 사랑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적인 사랑이 바로 그것인데, 어쩌면 이것은 일방적인 구원을 주시려는 신의 섭리에 의한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가페적인 사랑을 우리는 종교시를 통해 느낄 수 있게 된다.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명명하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암시적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사용한 허버트의 이 시는 그의 사랑의 시 연작에서 3번째에 해당하는 시이다. 전작의 사랑이라는 시 역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적인 사랑이 그려져 있지만 가장 선명하게 그리고 간단한 서술과 대화체의 기법을 사용하여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시가 바로 이 사랑의 세 번째 시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이 시를 통해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끝임 없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랑은 과연 어떻게 표현되고 실현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죄가 많고 허물이 많이 있어도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반응이다. 죄로 인해 신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멈칫하면 뒤로 물러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신앙적인 양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사랑은 주춤하면서 물러서는 인간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신의 끝없는 사랑과 자비로운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우리의 죄로 인해 무엇이 부족한 것임을 확인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사랑의 구애에 대해 인간의 태도는 겸손과 회개 그리고 순종의 모형으로 그려진다. 이것을 통해 신의 끝없는 사랑과 인간의 겸손이 시 속에서 병치를 이루면서 신앙의 표본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은혜로 인한 사랑과 그리고 그 사랑을 받으려는 인간의 겸손과 회개로 인해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켜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첫째 연에서 사랑이라 지칭 된 신의 방문을 거부하는 인간을 보면서 성서에 그리스도가 세리 삭개오의 집을 방문했을 때에 보여준 그의 자복함과 동일한 모습을 연상 해 볼 수 있다. 그것은 겸손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겸손을 주의 사랑은 용납하지 않고 사랑의 손길을 계속 뻗친다. 지나친 겸손은 교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부족함을 알려고 질문한다.

 

다음 연에서는 사랑의 임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화자를 보게 되고, 자신의 부족함과 죄로 인해 더럽혀진 자신을 더욱 낮춘다. 그럼에도 이미 사랑은 화자의 구원에 대해 자격을 가졌다고 말해준다. 자상한 신의 자비함은 그러한 겸손과 두려움을 시인 자신을 자기가 창조하였다고 하면서 사랑을 받으라고 계속 이야기 해준다. 여기서 손을 잡고 미소를 지었다는 것은 이러한 사랑의 표현이 언어적인 사랑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상황임을 알려주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자복하고 회개하는 인간의 응답이 전개된다. 그리고는 죄로 인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그렇게 해 주기를 간청한다. 그러나 죄는 화개로 인해 깨끗해 질 수 있음을 사랑은 알려주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의 일체됨을 위한 성찬의 참여를 독려한다. 그것을 수행하는 화자를 통해 인간의 구원이 사랑에 의해 성취되었음을 알게 된다.

 

사실 이 시의 배경은 성찬식으로 꾸며진다. 시 속에 직접적인 성찬의 행동과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기 바로 전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나누면서 자신의 피와 살이 주는 구원의 의미를 강조하는 모습이 시 속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만찬을 하면서 예수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마시고 떡을 나누는 것으로 구원의 사랑을 표현하였다. 그러한 그리스도의 구원을 향한 사랑이 암시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성찬의 의미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마시고 먹음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것이고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된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죄로부터 깨끗함을 받는다는 것과 같다.

 

시를 읽으면서 때때로 성찬식을 할 때 우리가 느끼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성찬식을 할 때 혹 어떤 교인은 이를 거부하려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죄지은 사람이라고 겸손해 하면서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공유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겸손은 오히려 달갑지 않게 여긴다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기에 따라서 그 죄에서 허물을 벗기 위해서는 성찬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깨끗함을 받는 것이지 허물과 죄가 많다고 성찬을 거부하면서 주의 살과 피를 받지 않고 거부만 한다면 영영토록 그 죄인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역설적인 수법이다.

 

이 시에서 나타나는 수법은 대화기법이다. 이 기법은 객관화된 모형을 주관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주는데 매우 용이하다. 따라서 직접적인 이미지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시의 맥락을 쉽고 편이하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그러한 사랑을 자신의 죄를 인지하면서 거부하려는 성도들의 겸손과 회개를 그려주고 있으며, 결국 성찬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 인하여 사랑으로 인해 구원을 얻게 되는 기독교적 사상이 짙게 나타나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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