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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허버트의 <창문>장인수의 <신앙시 산책>
장인수  |  영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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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30  15: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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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시 산책 16

 

창문

 

조지 허버트

 

주여! 깨어지기 쉬운 유리 같은 인간이 어떻게 당신의

영원한 말씀을 가르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당신의 신전 속에서 당신은 인간에게

당신의 은총으로 인하여 창문이 되게끔

이 영광스럽고 투명한 장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유리에다 당신의 이야기를 가열 착생시켜서,

당신의 생애를 성스러운 사제들 속에서

빛나게 만들었을 때에; 그 빛과 영광은 더욱 거룩하게 빛나고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물 같고 황량하고 희박하게 보일 것입니다.

 

교리와 생명, 색채와 빛은, 하나로 결합하고

혼합할 때 강하게 주목받고

경외로움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설교는

너울거리는 불길처럼 사라질 따름입니다.

그리고 양심이 아니라 귀에만 울립니다.

 

 

George Herbert-The Windows

 

Lord, how can man preach thy eternal word?

He is a brittle crazy glass:

Yet in thy temple thou dost him afford

This glorious and transcendent place,

To be a window through thy grace.

 

But when thou dost anneal in glass thy story,

Making thy life to shine within

The holy Preacher's; then the light and glory

More rev'rend grows, and more doth win:

Which else shows wat'rish, bleak, and thin.

 

Doctrine and life, colours and light, in one

When they combine and mingle, bring

A strong regard and awe: but speech alone

Doth vanish like a flaring thing,

And in the ear, not conscience ring.

 

유럽을 여행하게 되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있다. 성당이나 교회가 바로 그 곳이다. 그 곳을 방문하다보면 가장 화려하게 채색되어 장식해 놓은 유리창을 볼 수 있게 된다. 스테인드 그라스(Stained Glass)라고 하는 화려한 그림들로 장식된 유리창을 말한다. 그림의 주제는 대부분 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을 주제로 하거나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주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광객들이 그러한 성당이나 교회를 방문하면서 그 창문을 접하게 되면 아름다움과 함께 그 그림 속에 내재된 의미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기도 한다.

성경의 말씀들이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역들이 그림으로 채색되어 아름답게 여행객의 마음을 울리게 되면 그 창문을 통해 여행객들은 비록 자신이 크리스천이 아니라 하여도 기독교적인 신앙에 대해 은혜와 감동을 느끼면서 아주 작은 신앙의 걸음마를 하게 되는 것이다. 창문이 바로 그러한 전도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시는 부서지기 쉬운 유리의 이미지와 부족하고 연약한 사제직을 수행하는 자신을 대조적으로 비교하고, 그러한 연약한 사제와 유리창의 이미지를 통해 나타나는 역할을 대조시켜주면서 신이 내려주시는 사명과 은총을 노래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부서지기 쉬운 유리창도 성서의 이야기로 채색되면 훌륭한 메시지를 발산하고 그것이 사제의 말씀보다도 더 강렬하게 신자들에게 어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인간인 사제 역시 연약하여 보잘 것 없지만 신의 은총을 입게 되면 말씀의 대언자로서 강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 있다고 역설해 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시인은 부족한 사제의 인간적인 이미지를 유리와 같이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고 표현하여 두 존재가 모두 연약하다는 사실을 강조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부족한 사제에게 말씀을 선포 할 수 있는 시회를 주시고 또한 성전을 허락해 줌으로써 유리창과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게 하심을 감사하고 있다. 이로서 사제인 시인과 유리창이 동일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되고 똑 같이 신앙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다음으로 시인은 채색한 유리창의 이미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삶이 성전을 거룩하게 만들고 나아가 그리스도인에게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을 묘사해 준다. 채색된 유리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빛나게 해주고 있다. 본래 유리는 착색되지 않았을 때에는 평범한 유리로서 바깥을 보게만 할 수 있는 물 같고(waterish), 황량하고(bleak), 희박하게(thin) 보일 뿐이다. 그러나 거기에 성경의 역사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그림으로 그려져 착색되면 놀라운 신앙적인 역할이 수행되고, 놀라운 신앙적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시인이 주장하는 것은 바로 사제의 역할도 이와 같아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채색되어야 좋은 사역을(Preach)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 주고 있다. 이것은 성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사제가 될 수 없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아무리 자신의 신앙이 깊고 예수를 향한 믿음이 강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소명에 불리어 짐이 없다면 사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리창의 역할 또한 이와 같이 창 안에 그려져서 내재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나 말씀의 의미가 아름다운 색으로 채색되지 않는다면 그냥 유리창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채색 창과 사제의 대비가 나타난다. 채색 창을 통해 나오는 빛과 사제를 통해 나오는 설교의 대비가 그것이다. 그러면 어느 것이 더 우위일까? 라는 질문이 자동적으로 생산된다. 어느 것이 더 신앙적 감명을 주는 것 일까? 독자들의 혜안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인 사제의 설교보다도 채색 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의 은총이 더 우위임을 강조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채색 창은 빛과 혼합하여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설교는 내면이 아니라 귀만 울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사제는 귀를 울리는 육신적인 감동을 주는 것에 국한되지만, 채색된 말씀의 유리창을 통해서는 영혼을 흔들리게 하고 깊은 영적인 신앙체험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시인 허버트의 이러한 결말은 시인의 신앙적인 겸손을 보여주고 있으며 신에 대한 영광의 표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허버트는 겸손의 사제였다. 늘 자기를 낮추고, 정말로 자신이 하나님의 사제 역할을 감당할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 늘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제였다. 그것은 바로 그의 겸손과 소박함에서 나오는 절제된 신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을 가진 모든 신앙인들이라면 바로 이러한 신앙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신앙은 설교(Sermon)나, 믿음의 가르침(Preaching)보다는 유리창(Window)을 포함한 성전(Temple)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성전을 찾아오면 그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자동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고 스스로 믿음의 길로 접어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허버트가 그의 시집 자체를 성전으로 명명하고 시집을 구조화시킨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시속에는 이렇게 교회의 구조물을 통해 기독교의 신성함을 그려내고 성전의 부분들을 이미지화함으로서 독특한 신앙적 표상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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