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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허버트의 <요셉의 외투>장인수의 <신앙시 산책>
장인수  |  영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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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6  14: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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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시 산책 15

 

요셉의 외투

 

조지 허버트

 

상처받아 나는 노래 부르고, 괴로워 시를 짓는다.

내 던져진 나는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슬픔은 그 음조를 변화시켰고,

그를 가장 기쁘게 한 것은 만물을 변화시키는 그의 의지였다.

그가 잘 알기는 하지만 내 많은 슬픔과 고통 중에

단지 하나가 그의 즐거움의 경력을 가졌다면

분명 그것은 그것과 더불어 내 마음까지 간직할 것이다.

고통과 슬픔 둘 다는 시체를 가져가기 위해

관을 찾을 때까지 달려갈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은 슬픔에 기인한 것이기에, 그는 경주를 망쳐버렸다.

번민에 빠져있는 ‘기쁨’의 외투 중 하나는 안심하고

내 마음속에 남아 활기가 없어지도록 그것을 유혹하는구나.

나는 한때 가져왔었던 그의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살며,

내 기쁨이 슬픔이 되게 하고 이제 내 슬픔이 노래가 되는구나.

 

 

Joseph's Coat

 

George Herbert

 

Wounded I sing, tormented I indite,

Thrown down I fan into a bed, and rest:

Sorrow hath changed its note: such is his win,

Who changeth an things, as him pleaseth best.

For well he knows, if but one grief and smart

Among my many had his fun career,

Sure it would carry with it ev'n my heart,

And both would run until they found a bier

To fetch the body; both being due to grief.

But he hath spoiled the race; and giv'n to anguish

One of Joy's coats, ticing it with relief

To linger in me, and together languish.

I live to show his power, who once did bring

My joys to weep, and now my griefs to sing.

 

제목으로 등장하는 요셉의 코트는 상징적이며, 작품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독자들은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형들에게 버림받았던 요셉의 상황을 그려보면 좋을 것이다. 재난이 행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요셉이 형으로부터 인신매매의 팔을 당한 것은 불행이었지만 신의 섭리에 의하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을 준비하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것은 마지막의 슬픔이 기쁨이 되고 울음이 노래가 된다는 결말로 바뀜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시인은 기독교인들의 기쁨과 슬픔에 대한 대비를 그려주고 있다.

요셉의 외투란 상형적인 의미를 보여주는데 바로 코트의 색깔이 주는 의미가 바로 기독교인들의 슬픔과 기쁨의 상징이다. 팔려간 요셉과 그것으로 인해서 총리가 되어버린 요셉의 모습에서 대조의 의미를 살펴 볼 수 있는데 상처가 노래가 되고, 괴로움이 시 짓기가 되며, 내던져짐은 휴식으로 바뀌고, 슬픔은 승리가 도고, 슬픔이 흥겨운 상황으로 역전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대조적 기법이 나타나고 있으며 시의 전체를 대조의 장면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대조의 의밀ㄹ 생각하면서 시를 이해하면 된다는 것이다.

먼저 요셉의 옷의 대조가 성서적인 배경에서 드러난다. 창세기 38장 29절에 보면 형들로부터 버림받은 요셉에 구덩이에 빠뜨려지고 결국에는 애급으로 팔려가게 된다. 그리고 형들은 요셉의 외투에 숫염소 피를 묻히고는 아버지 야곱에게 이것을 갖다 준다. 아버지 야곱은 그것을 보고는 요셉이 동물에게 물려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때의 요셉의 외투는 슬픔, 죽음, 고통 그리고 괴로움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창세기 41장 42절에는 꿈 해석을 통해 요셉이 총리가 되고 왕은 그에게 총리의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를 채워주는 장명이 등장한다. 이때의 코트는 기쁨과 승리 그리고 즐거움이 시어로 등장한다. 그래서 이 시는 대조적인 시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옷의 상징석이 시인의 삶에 대비되어지는데, 자신의 갈등하는 삶을 고통 속에 있는 요셉에 비추어본다. 그러면서 이를 통해 갈등이 해소되고 기쁨으로 순종하는 자신의 모습을 시 속에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요셉의 팔림은 분명하게 불행한 일이었지만 신의 섭리에 따르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축복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적인 준비였던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행의 이탤릭체로 강조하는 즐거움이 슬픔으로 변했다가, 울음이 기쁨으로 변했다는 사실로 이를 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요셉의 코트는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보여준다. 더불어 형제들의 질투도 그 안에 내재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여기서 외투의 색깔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두 개 모두 다 붉은 색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피와 권력 그리고 기쁨과 슬픔을 모두 포함하는 상징적인 색깔이다. 이러한 색깔의 상징성을 통하여, 이 시가 그려내는 대조의 궁극적 의미가 아무리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해도 결국은 기독교적 의미로서는 구원의 상징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체적인 이미지를 종합해 보건대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오묘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인간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이 하아님의 섭리 안에서는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인간의 구원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신이 우리에게 슬픔과 고통을 준다는 것은 새로운 기쁨과 승리를 준다는 하나의 예표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며 이는 신의 섭리라는 논리로만 이해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 속에는 기쁨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이 오며하고 조화롭게 섞여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슬픔과 고통 속을 거쳐야 만이 진정한 기쁨에 도달 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삶속에 내재되어 있음을 이 시를 통해 독자들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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