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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의 미래를 제시하다민촌(民村) 이선우 현대서예가를 만나다
박윤아 기자  |  pys0308@hanma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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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5  11: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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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과 청주에서 활동 중인 민촌 이선우 현대서예가를 만났다. 그가 하나의 점으로 시작해 선을 만드는 필묵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니 사람이 보이고 그림도 있다. 그리고 새가 되어 날아갈 듯 사뿐한 글씨의 추임새가 느껴진다. 마지막으로는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하는 부드러움도 있다. 자칫 예술을 이해 못한다고 핀잔 들을까하는 염려는 버려놓고 보아도 될 것 같다. 그만큼 여백의 미, 선의 예술이 대중에게 친근하다.

전통 속에서 찾는 현대서예의 모티브

민촌 이선우 선생의 작품에서 가장 두텁게 다가서는 느낌은 너무나도 친근함이다. 그리고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창조하는 실험정신이다. 선과 문장이 만나 혼신의 힘으로 창조되는 모습이 바로 민촌선생이 추구하는 현대서예의 매력이기도 하다. 

민촌 선생은 초등 4학년 시절, 백운서당의 청계 강달주 선생으로부터 사사를 받은 것이 서예입문의 계기가 되었다. 그게 벌써 50여년이 훌쩍 넘어버린 일이다.

“조부께서 서당을 하고 계셔서 항상 아침 학교 가기 전 한 시간 정도 한문을 배우게 되었죠. 그 때 배운 사서삼경, 명심보감, 채근담, 주역 등이 지금 작품 활동의 모티브가 된다고 봐야죠. 어릴 적 들었던 옛 성현들의 말씀이 지금까지 작품에 영감을 주곤 합니다”

   
 

처음엔 추사체에 매력을 느껴 공부를 했다. 그 길을 고집하며 가다보니 어느 날, 선생은 자신만의 글씨와 예술이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2002년을 계기로 그는 현대서예에 입문하게 된다. 결국 옛것을 본받아 현대적인 새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의 길을 택한 그다.

현대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들에서 소통을 이루는 그만의 연결고리는 다름 아닌 퍼포먼스다. 전통 위에 현대가 충돌하며 나가는 것, 어쩌면 현대서예의 길인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대중과 현대서예와의 소통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 자신의 예술적 갈등을 풀어내주는 것은 역시 퍼포먼스였다.

대중과 함께 하는 퍼포먼스는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민촌 선생 특유의 감각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지금까지 그는 100여회의 퍼포먼스로 다양한 감동을 이끌었다. 하얀 무명천 화폭 위에 붓은 날개가 되어 일필휘지의 점으로 선을 만들고 그가 느끼는 마음을 표현한다. 어떨 땐 대부분의 퍼포먼스 예술가들이 꺼리는 15m 길이의 천에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도 현장에서 그 분위기와 느낌만 가지고서 하는 일이다.

 

   
 

민촌선생의 작품모티브 중, 다른 하나는 한자의 처음 형태인 갑골, 상형문자 등이다. 자연과 사물의 이치를 통해 만들어진 글자들 속에서 자연스러운 글씨를 다듬어내며 창조적이고 개성 넘치는 작품을 만든다. 그 속에는 어디서나 친근하게 이웃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마치 훌쩍 날아오르는 새가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의 느낌을 이렇게 얘기한다.

“글씨의 매력은 대단해요. 한문은 흥에 겨워 힘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짜임새 있게 할 수 있지만 한글은 또 변화무쌍한 즐거움을 주기도 하죠.”

삶의 질곡을 딛고 일어선 붓의 힘

질곡 있는 삶을 오롯이 살아낸 예술가의 얼굴은 무척 해맑은 느낌이다. 한문과 서예를 어릴 적부터 접한 그였다. 초등 4학년 시절, 처음 대덕군 서예대회에 나가 수상을 하면서 서예가로서의 꿈을 꾸었지만 배움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집안의 종손이자 10남매의 장남으로서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또 버스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값비싼 오토바이를 구해 3년여 동안 글씨를 배우기 위해 혼자 먼 길을 다니기도 했다. 서예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촌선생을 다시 좌절시킨 건 폐결핵이었다. 약도 구하기 어려운 옛날이었다. 그는 서예 말고도 꿈꾸었던 사관학교 입학마저 포기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손끝에선 붓을 놓지 않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민촌선생은 마침내 1979년, 그의 나이 27세 되던 해 대한민국 서예대전에 입선하게 된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휴식을 취하며 다시 초야에 묻혀 지낼 수밖에 없었던 민촌선생에게 1993년 유성에서 열린 ’93엑스포는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이벤트의 일환으로 3일 동안 ‘가훈 써주기’를 하는 행사에 그에게 동참하자는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여러 이유로 대중 앞에 나서기를 주저했던 그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보았다. 첫째 날의 무거운 긴장감이 삼일 째에는 자신감으로, 이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얻는 순간이었다.

   
 

이후, 다시 한 번 서예대전의 입선과 함께 광주 남도예술회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그의 행보는 무척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그는 88올림픽에서의 퍼포먼스를 비롯한 역사적인 순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소에서 퍼포먼스를 이뤄냈다. 

“지난 2013년 1월1일에는 독도일출을 보며 약 300명의 서예인들이 모여 선상에서 퍼포먼스도 했었지요. 당시 제가 작품에 몰입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계속 클로즈업 되고 있었나 봅니다. 나중에 지인들이 TV를 통해 봤다고 인사를 하더군요.”

민촌선생은 자신의 활동을 일일이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작품을 통해 대중과, 그리고 자신과 소통하는 일에 더 열중한다. 그래서 사진이나 영상 자료가 거의 없어 주변인들이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민촌선생은 원래 유성구 봉산동이 고향이다. 이제 그는 유성의 문화 속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는 예술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작년엔 유성문화원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또 단오제 행사나 장터만세운동에서의 멋진 퍼포먼스는 유성과 대전의 대중 속으로 한껏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다.  

여담으로 민촌선생의 작품을 중국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임진년, 용의 해를 맞이해 초청을 받아 중국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었는데, 즉석에서 용을 형상화한 대형작품을 써내려갔다. 잠깐의 일정이라 귀국 후엔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작품이 지금도 산동성 플라자 호텔에 걸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작품 활동의 여정을 기록하지 않는 그에게 이렇게나마 소식이 들려오니 다행이랄 수밖에...

   
 

지난 2013년에는 서울 인사동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그룹전을 선두로 현대서예인모임 32명의 회원들과 함께 안양, 군산, 서산, 밀양, 울산 등을 거치는 전국 순회전을 열기도 했다.

민촌선생이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시도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끊임없는 도전이다. 퍼포펀스, 고요함 속에서 그가 던지는 붓의 긴장감이 앞으로 어떤 소통을 이루어낼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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